음식문화운동가 고은정 선생은 2025년 3월, 어린이 음식 도감 『장 도감』을 펴냈다. 그간 전국을 돌며 제철 음식과 장 담그기를 알리고, 수많은 음식 교육자를 길러낸 그는 이제 ‘음식 선생님들의 선생님’으로 불린다. 『장 도감』은 어린이부터 초보 요리사까지, 누구나 장 문화를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하고 즐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책이다.
고은정 선생은 지리산 실상사 앞 ‘맛있는 부엌’에서 10년 넘게 <제철음식학교>를 비롯해 다양한 음식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약선학교>, <김치학교>, <우리장학교>, <밥 짓는 학교>, 그리고 책과 식사를 함께 나누는 <책 먹는 부엌>까지. 1년 내내 다양한 사람들이 그의 요리 프로그램을 찾는다.
“장만 있으면 냉이 하나로도 훌륭한 밥상이 됩니다.”
“어쩌면 평범한 음식을 가르치는 분이 적은 게 아닌가 합니다. 제가 전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식재료는 제철 재료, 간은 직접 담근 장으로’라는 두 가지 원칙만 지키면 됩니다.”
그는 한 가지 식재료로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 힘이 바로 장에 있다고 말한다.
“냉이 하나로 무침, 국, 전까지 만들 수 있어요. 그건 우리가 담근 장이 있어 가능하죠. 그 힘을 다시 찾으면 일상의 음식 고민도 훨씬 줄어들 겁니다.”
『장 도감』, 장으로 완성하는 밥상
『장 도감』은 『김치 도감』, 『밥 도감』, 『국찌개 도감』, 『반찬 도감』에 이은 다섯 번째 음식 도감 시리즈이자 장을 주제로 한 첫 어린이 도감이다.
“앞선 책들도 모두 장으로 맛을 내는 레시피였어요. 『장 도감』은 그 모든 작업을 완성하는 책이죠. 우리나라는 작물로 키우는 채소와 양념류가 많고 산과 바다에서 사계절 나는 식재료가 풍성합니다. 제철 재료를 장으로 조리하면 훌륭한 한식 한 상 차림이 됩니다. 한국 음식은 장 음식입니다.”
된장, 간장, 고추장의 기본부터, 이를 활용한 간단한 요리까지. 장은 어렵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생활의 일부라는 메시지가 책 전반에 흐른다.
“밥상을 차리고 싶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게 하고 싶었어요. 누가 만들어도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조리법을 알리는 게 목표였어요. 그래야 일상의 평범한 음식을 쉽게 만들 수가 있잖아요. 특히 어린이들에게,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 우리 장의 맛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세대로 장 문화가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장 담그기는 생각보다 쉬운 일입니다”
고은정 선생은 장을 ‘지키는 것’이 아닌 ‘이어가는 것’이라 말한다.
“우리 음식은 전통에 머물거나 옛 문헌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에요. 씨간장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자신이 처음 담근 장이 곧 씨간장이 되고, 그걸 또 나눠주는 것에서 장 문화는 다시 살아납니다. 유물처럼 박물관에 모셔두기에 우리 장은 너무 맛있고 장 담그기는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그는 전통을 박물관에 가두지 않는다. 대신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도록 수없이 계량하고 시도하여 단순한 조리법을 정리해 낸다. 복잡하거나 구하기 어려운 재료는 과감히 덜어내고, 장이 가진 본연의 맛으로 접근하게 한다.
“장 담그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특별한 소금이나 물도 필요 없습니다. 중요한 건 담그는 시기와 잘 뜬 메주, 소금의 양입니다. 누구나 시작할 수 있고 생각보다 훨씬 쉽습니다.”
밥상의 독립, 삶의 독립
고은정 선생이 바라는 건 크고 특별한 변화가 아니다. 그는 유튜브 채널 ‘집밥 본능’을 통해 아주 평범한 요리 영상들을 올리고 있다. 한의사 김형찬 선생과 함께하는 이 채널의 목표는 ‘밥상의 독립’이다.
“스스로 밥상을 차리는 사람, 그런 독립된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동네마다, 집마다 장독대가 놓이고 장을 담그고 함께 음식을 해 먹는 문화가 자리 잡아서 변화가 심하고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힘을 주고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는 장 담그기가 특정 세대의 기억에 머무르지 않고, 젊은 세대의 새로운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 그 시작이 바로 『장 도감』이다.
계절마다 떠오르는 장, 위로가 되다
된장으로 만든 양배추 쌈, 질리지 않는 고추장찌개, 감기엔 아욱국죽. 그에게 장이 들어간 음식은 계절마다, 몸 상태마다, 감정마다 다른 위로를 준다. 특히 친정어머니의 아욱국죽은 그에게 약이자 마음의 집이다.
“장 담그기는 참 재미있는 일이에요. 처음엔 그저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어느새 그 장독을 꺼낼 일이 기다려집니다.”
『장 도감』은 장을 다시 일상으로, 우리 부엌 한가운데로 데려오는 책이다. 그것은 단지 전통의 복원이 아니라, 스스로 밥상을 차릴 줄 아는 삶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그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장이 있다.
장독대 / 김제니 기자 jennykim.jd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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