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에 절고 종지가 밥상을 따라다니듯, 일상의 장 풍경이 사람을 표현하는 비유로
“장독보다 장맛이 좋다”, “장 단 집에는 가도 말 단 집에는 가지 마라”,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우리말 속담에는 유난히 장과 간장이 자주 등장한다. 사람의 됨됨이를 장맛에 빗대고, 말조심을 이야기하면서도 장을 끌어온다. 세상 경험이 많은 사람은 ‘간장에 전’ 사람으로 표현했고, 사람의 자리와 행동을 설명할 때는 밥상 위 작은 간장 종지까지 등장시켰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장이 그만큼 우리 삶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장을 담그고, 장독을 살피고, 매일 밥상에서 간장과 된장을 먹던 시절 장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는 생활의 언어였다. 누구나 아는 장맛과 장독, 간장 종지의 모습을 가져오면 사람의 성격과 처지, 세상살이까지 단번에 설명할 수 있었다.
간장과 장이 등장하는 속담을 따라가 보면 장이 우리 음식에서 차지했던 자리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생각까지 엿볼 수 있다.
겉보다 속이 중요하다…“장독보다 장맛이 좋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그 안에 담긴 것을 장에 빗댄 속담이 있다.
‘움 안에 간장’은 외양은 좋지 않으나 내용은 훌륭함을 이르는 말이다. 한식진흥원은 간장과 관련한 옛 표현을 소개하며 이 속담을 움막은 보기 좋지 않지만 그 안에 든 간장은 훌륭하다는 의미로 설명한다.
‘장독보다 장맛이 좋다’도 비슷하다. 겉모양은 보잘것없더라도 그 내용은 훨씬 훌륭하다는 뜻이다. 장독의 모양보다 그 안에서 제대로 익은 장맛이 중요하다는 너무나 익숙한 생활의 경험이 사람을 평가하는 말이 됐다.
“장 단 집”은 가도 “말 단 집”은 가지 마라
장맛과 사람의 말을 나란히 놓은 속담도 있다.
‘장 단 집에는 가도 말 단 집에는 가지 마라’는 장맛이 좋은 집에는 가도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는 사람은 경계하라는 의미다. 같은 ‘달다’라는 말을 장맛과 사람의 말에 붙여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 재치가 돋보인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는 집안에 잔말이 많으면 살림이나 일이 잘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장맛을 제대로 내는 일이 살림의 중요한 부분이던 시절, 집안의 형편과 분위기를 ‘장맛’ 하나로 표현한 셈이다.
두 속담에서 장맛은 단순히 음식의 맛이 아니다. 한 집안의 살림과 사람의 됨됨이까지 가늠하는 기준으로 등장한다.
“간장에 전 놈이 초장에 죽으랴”…산전수전 겪은 사람처럼
오늘날 처음 들으면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속담도 있다.
‘간장에 전 놈이 초장에 죽으랴’는 단단히 단련된 사람이 사소한 일을 무서워하겠느냐는 뜻이다.
여기서 ‘전’은 음식을 뜻하는 전(煎)이 아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절다’의 활용형이다. ‘간장에 전’은 간장이 깊이 배어 절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간장에 푹 절어 더 이상 웬만한 것에는 끄떡없는 모습을 온갖 경험을 거쳐 단련된 사람에 빗댄 것이다. 음식을 만들며 누구나 보았던 ‘간장이 배어드는 모습’이 사람의 경험과 내공을 설명하는 말이 됐다.
밥상 한가운데 작은 간장 종지도 속담이 됐다
간장만이 아니다. 간장을 담아 밥상에 올렸던 작은 종지까지 속담 속으로 들어왔다.
‘사또 밥상에 간장 종지 같다’는 변변치 않은 것이 한가운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작은 간장 종지가 밥상 한가운데 놓였던 모습에서 나온 표현이다.
‘간장 종지 노릇을 한다’는 어떤 대상에게 딱 달라붙어 굽실거리며 알랑대는 모습을 뜻한다. 밥상을 차릴 때마다 빠지지 않고 따라붙는 간장 종지의 모습에서 사람의 행동을 떠올린 것이다.
오늘날에는 간장 종지를 따로 놓지 않는 밥상도 많아 이런 속담의 풍경을 상상하기 어려워졌다. 역으로 속담을 통해 과거 우리 밥상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도 있는 셈이다.
음식이어서 속담이 되고, 삶이어서 말이 됐다
간장과 장이 등장하는 속담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보인다. 장독과 장맛, 장을 담그는 집, 간장에 절어가는 음식, 밥상 위 간장 종지까지 모두 당시 사람들이 일상에서 늘 보고 경험하던 풍경이라는 점이다.
장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었다. 집에서 직접 담그고 오랜 시간 익기를 기다렸으며, 장맛은 한 집안의 음식 맛을 좌우했다. 그렇게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장은 자연스럽게 사람과 세상을 설명하는 말이 됐다.
겉보다 속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장독과 장맛으로 했고, 사람의 말을 경계할 때도 장맛을 가져왔다. 산전수전 겪은 사람을 설명할 때는 간장에 절어가는 모습을 떠올렸고, 사람의 처지를 이야기할 때는 밥상 위 간장 종지를 불러냈다.
한식에서 장을 ‘맛의 뿌리’라고 한다면, 속담 속 장은 우리 생활문화의 흔적이라고 할 만하다. 오랫동안 장을 담그고 먹으며 살아온 시간이 음식에만 남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말에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장독대 / 김제니 기자 jennykim.jd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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