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룩부터 간장까지, 직접 만들고 실패하며 쌓아가는 발효 경험
레시피보다 실험과 기록, 작은 차이를 관찰하며 발견하는 발효의 변화
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 평장완)에 발효를 탐구하는 신생 소모임이 생겼다. 아직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전용 공간도 없는 '효리효리 균수리'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정해진 레시피를 따르기보다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변수와 변화를 관찰하며 자신들만의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동아리방을 얻기 위해 시작된 모임
‘효리효리 균수리’는 처음부터 발효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임은 아니었다. 개인 작업실이 없던 조형예술과 학생들이 자유롭게 모일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동아리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요리와 발효에 관심 있던 학생들이 모였다.
발효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막걸리 만들기 수업이었다. 같은 재료와 같은 누룩을 나눠 담갔지만 2주 뒤에는 사람마다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
동아리 회장인 윤나영(한예종 조형예술과 2학년) 학생은 “분명 같은 재료로 같은 날 담갔는데 2주 뒤에 맛을 보니까 다 다른 맛이 났다”며 “그 과정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었고, 함께했던 사람들과 그 만드는 감각을 잊고 싶지 않아 계속 발효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이들은 발효를 하나의 실험이자 기록의 과정으로 이어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만드는 맛
발효식품의 변화에는 미생물의 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활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색과 향, 맛의 변화로 나타난다.
‘효리효리 균수리’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는 것도 바로 이러한 변화다.
이들은 발효를 정해진 레시피를 따라 완성하는 조리 과정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같은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온도와 습도, 시간 등 환경의 작은 차이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관찰하고 기록한다.
이들에게 실수나 예상하지 못한 결과 역시 중요한 기록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살펴보고, 그 경험을 다음 실험의 조건을 바꾸는 데 활용하기 때문이다.
발효를 직접 경험하다
막걸리 이후 윤나영 학생은 사워도우용 천연 발효종인 르방을 직접 기르기 시작했다. 르방을 친구들에게 나눠주면서 발효물이 사람 사이를 오가는 경험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는 "르방을 나누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균이 퍼지듯이 사람들도 모여들고 또 퍼져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어떤 물체가 고정된 채 남겨지는 게 아니라,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둥둥 떠다니는 그 상태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르방과 막걸리, 그리고 간장은 서로 다른 발효식품이지만 그 안에는 공통점이 있다. 미생물의 활동과 시간, 그리고 발효가 이루어지는 환경이 재료의 성질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맛과 향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이러한 발효의 공통점을 직접 경험하면서 발효식품을 바라보는 자신들만의 관점을 만들어가고 있다.
정답보다 발효의 과정을 기록하다
현재 ‘효리효리 균수리’의 회원은 10여명이다. 조형예술과 학생을 중심으로 다른 전공 학생들도 함께하고 있다. 아직 정식 동아리가 아니고 전용 공간도 없어 활동할 때마다 조리 도구를 챙겨 빈 강의실을 찾아다닌다.
윤나영 학생은 “조교님들 눈치 보면서 짐 싸서 도망 다니고, 혼나기도 하면서 강의실을 전전했다”면서도 “몸은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제일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추억”이라며 웃어 보였다.
지난 축제에서는 직접 구운 사워도우 빵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선보였다. 직접 빵을 구웠다는 점에 학생들의 관심이 이어졌고, 이후 약 30명이 동아리 활동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많은 사람을 받기보다 현재의 작은 규모를 유지하기로 했다. 운영진 역시 발효를 배우는 단계인 만큼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구조보다 함께 공부하는 방식이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윤나영 학생은 “저희도 발효를 완전히 처음 접하는 단계라 누구를 가르쳐줄 입장이 아니다”라며 “셋씩 조를 짜서 스스로 공부하고 돌아가며 서로에게 배움을 나누는 구조여야 깊이 있는 실험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간장처럼, 시간을 쌓아가는 발효
간장은 빠르게 완성되는 식품이 아니다. 원료가 미생물의 활동과 시간을 거치면서 서서히 변화하고, 그 과정에서 고유한 맛과 향이 만들어진다. ‘효리효리 균수리’가 동아리를 운영하는 방식 역시 이와 닮아 있다.
이들은 아직 자신들만의 완벽한 발효법을 갖고 있지 않다. 어떤 환경이 가장 좋은지, 어떤 조건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계속 실험하는 중이다. 하지만 정답을 미리 정해두지 않고 발효의 변화를 관찰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가능성을 발견한다.
앞으로 이들은 미생물의 환경을 다룬 일본 서적 『푸드스케이프』를 번역하고 공부하며 발효 환경에 대한 탐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미생물이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발효실을 직접 만들고, ‘효리효리 균수리’만의 발효 환경을 구축하는것이 목표다.
윤나영 학생은 동아리의 미래에 대해 “학교 안에서 만들어진 모임인 만큼 흩어지지 않고 몇 년간 꾸준히 이어졌으면 좋겠다”며 “정답을 정해두지 않고 환경에 맞춰 변화하면서 우리만의 방식을 천천히 쌓아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간장을 비롯한 전통 발효식품은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과 기술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그리고 지금, 한예종의 작은 강의실에서는 또 다른 세대가 발효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아직 전용 공간도, 완성된 레시피도 없다. 하지만 미생물과 환경, 그리고 시간의 변화를 바라보며 발효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정은 이미 시작됐다. 간장이 긴 시간 동안 발효를 통해 깊은 맛을 만들어내듯, ‘효리효리 균수리’역시 서두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발효 경험을 하나씩 쌓아가고 있다.
장독대 / 김민지 기자 gim66307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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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간장협회(회장 우춘홍)는 장류 생산자·요리사·교육자·소비자 등이 함께하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비영리단체로, 한식 간장을 비롯한 전통 장류의 올바른 장 문화를 전파하는데 힘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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